신당동성당은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1873~1897)를 주보로 모시고 있다.
본당 주보로 정한 이는 신원식 신부이다. 데레사는 1923년에 시복되고 1925년에
시성되었으며, 온 교희가 기리는 이 분의 축일은 10얼 1일이다.
소화( 小花)데레사는 일종의 애칭이며 성녀로서의 공식명칭은 '아기예수(Jesus
Finante)와 성안( 聖 顔 )의 성녀 데레사' 로서 보통 '예수 영해의 성녀 소화
데레사' 라고 부른다. 리지외(Lisieux)의 맨발의 가르멜 수녀원에서 수도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리지외의 데레사' 라고도 한다.
데레사는 결핵에 걸려 1897년 9월 30일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하느님 품에 안길
때까지 참으로 훌륭한 표양을 보이셨다. 위대한 사랑, 깊고 맑은 겸손, 완전한
신뢰, 어린이와 같은 순진, 이것이 그의 생애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녀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큰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지극히 작고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서 최선과 성실을 다한 성녀인 것이다.
병을 앓으면서도 그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며 예수 그리스도님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드러낸 데레사는 또한, 전교회의 대주보(大主保)이니, 데레사는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가운데 모든 영혼을 구하려는 열의에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죄인들의 희개를 위하여, 사제들을 위하여 특히, 먼 지방에 가 있는 전교
신부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중병으로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어려운 고통을 한마디 불평 없이 참아 견디며 머나먼 지방에서 전교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바쳤다.
신원식 신부는 그가 신학교에 입학할 때 그의 이모인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강에스텔 수녀로 부터 입학선물로 받은 소화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 "영혼의
이야기(L'histoire D' une Ame)"를 읽고 크게 감동하여 어느 성인 못지않게
공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원식 신부는 신학생 시절, 소화 데레사 성녀를 찬양하는 노래(성가)가 없음을
알고 1941년 3월 부제품을 받고나서 노랫말을 작사하여 당시 신학교 3년 후배인
이문근( 李文根 ,요한) 신학생으로 하여금 작곡하도록 하였다. 현재의 가톨릭성가
292번인 그 1절을 여기에 옮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