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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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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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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당동성당
댓글 1건 조회 40회 작성일 25-09-28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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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6,1ㄱㄴ. 4- 7; 1티모 6,11ㄱㄷ-16;루카16,19-31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어느 두 사람이 다방에서 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워낙에 말수가 적어, 멀뚱멀뚱 앉아서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남자가 먼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습니다. “, 제 이름은 이구요, 성은 씨 입니다.”

 

   이렇게 남자가 자기 이름이 전철이라고 사뭇 진지하게 말하는데, 여자가 갑자기 박장대소를 하며 뒤집어지는 게 아닙니까? 남자는 민망한 듯 물었습니다. “아니, 뭐가 그리 우스우신지요?” 그러자 여자가 미안하다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실, 제 아름이 이호선이거든요.”

 

   이렇게 웃는 얼굴로, 늘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덧 9월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간에 10주기도 성월을 시작하고, ‘순교자 성월을 마감하면서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성인의 신앙을 잠시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18377월경 유진길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린 아들과 함께 자진하여 포도청에 찾아가 자신이 천주교 신자라며 자수를 합니다. 그러자 포졸들이 어린 아이에게도 배교를 강요하면서 그 아이의 넓적다리에서 살점을 떼어내는 고문을 합니다. 그래도 배교를 하지 않자 벌겋게 달궈진 숯 덩어리를 입에 집어 넣으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두려움 없이 자요.” 하고 당당하게 입을 벌립니다.

 

   이렇게 온갖 고문으로 회유를 당하고, 그 어린 아이는 1021일 옥중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됩니다. 이때 그의 나이가 불과 열네 살이었는데, 이 성인이 누구 이지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유대철 베드로 성인이십니다.

 

   이렇게 목숨 바쳐 하느님의 신앙을 증거하신 순교자들처럼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제2독서의 말씀대로, 우리도 하느님의 의로움과 신심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면서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도록 합시다.”

 

   우리 본당 교적을 보면, 신자는 총 3,983명입니다. 그런데 1,483명이 견진성사를 받지 못하였는데, 우리 배우자와 자녀는 견진성사를 받았습니?


   그럼, 견진성사를 왜, 받아야 합니까? 견진성사의 은총, 효과는 무엇인? 지금부터 함께 상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견진성사의 효과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아버지 하느님과의 관계를 보다 더 견고하게 해주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더욱 친밀하게 결합시켜주며, 우리 안에 성령의 은총을 더 풍요롭게 증대시켜 줍니다.

 

   또한 견진성사는, 우리와 교회의 결합을 더욱 완전하게 해주고, 우리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신앙을 전파하고 옹호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사를 선사해줍니다.

 

   이런 놀라운 효과, 하느님의 은총을 외면해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따라서 형제자매 여러분, 오는 1012일 교중 미사 때 견진 성사 입교식이 있는 만큼, 나의 가족과 이웃이 견진성사를 받고,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권유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어떤 부자는 명품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나자로는 어떠 하였습니까? 부잣집 바로 대문 앞에서 종기투성인 채로 배고픔으로 누워 있습니다.

 

   이렇게 바로 옆에서 가난과 질병으로 나자로가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부자는 이웃의 고통을 어떻게 알아채지 못했던 겁니까? 자신의 사치와 향략과 탐욕이 타인의 고통을 보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커다란 죄악입니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2년 동안 어린이 15천여 명을 포함하여 63천여명이나 사망하였고, 지금도 폭격과 기아 등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참혹하고 비참한 상황을 목격하고도 남의 나라로 치부하고 눈을 닫고 있습니다. 무관심한 채로 수수방관을 하고, 더욱이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아들이 자기 어머니가 체격이 건강한 거지에게 적선을 베푸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불만을 토로합니다. “어머니, 저런 사람에게 적선을 하는 것은 게으름만 키워주게 돼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줍니다. “아들아, 내 집 문전에 찾아오는 사람이면 그가 누구든지 다 하느님처럼 따듯이 맞이해주고, 우리가 힘닿는 대로 그를 도와주어야 한단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그 아들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거절하지 말고, 그 어머니처럼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하느님처럼 힘닿는 대로 보살펴주고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여년 전 미국에 살 때 봉성체를 해드리기 양로원을 방문한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 노인들은 안락한 시설에서 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으며 훌륭한 식사를 제공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인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무표정인 채 문 밖을 쳐다 만 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양로원 원장에서 물었습니다. “, 모두들 문 입구를 바라보는 것지요? , 한 명도 미소를 짓지를 않나요?” 그러자 원장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매일 그렇답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잊은 채 항상 문을 바라보고 있어요. 자기들을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이렇게 예전보다 좋은 시설과 보호를 받고 있지만, 많은 노인들이 얼마나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까? 사회적 고립과 소외로 외로워 하고 있는 가족과 이웃이 없지는 않은지 좀 더 관심을 갖고, 따듯하게 대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인 정호승의 시, ‘수선화을 낭송해드릴 테니,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형제자매 여러분, 시인의 말대로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맙시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외로울 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하느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일으켜 주시고, 따듯이 나를 안아 주신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025.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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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님의 댓글

루치아노 작성일

하느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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