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평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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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일 예레38, 4- 6. 8-10;히브12, 1- 4;루카12,49-53
우리의 평화, 그리스도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예수님께서 성탄하실 때, 천사들이 이렇게 노래하였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평화를 선포하셨고”(에페2,17),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세상에 평화를 이룩하지 않으셨습니까?”(콜로1,20참조)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24,36)
또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에페 2, 14)가 아니십니까?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왜, 예수님의 평화가 오히려 세상에 분열을 일으킨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14,27)
이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유언을 하셨듯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그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남겨 주신 평화, 또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평화는 과연 무엇입니까?
노르웨이의 사회학자 요한 갈퉁(J.Galtung, 1930-2024)은 평화를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이렇게 구분하였습니다.
소극적 평화는 전쟁과 테러, 신체적 위협 등 물리적 폭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반면에 적극적 평화는 이런 물리적인 폭력 뿐만 아니라, 기아와 빈곤, 인종차별과 혐오, 불공정과 부정부패 등 사회구조와 문화적 폭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적극적 평화가 바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평화입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평화는 전쟁 등 물리적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기아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이념 종교 인종 차별과 혐오가 없는 평등과 상호 존중, 그리고 생태계 보호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평화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는 어떻습니까? 생태계를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있고,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약탈하고, 민족 종교 이념 간에 대립과 갈등이 얼마나 심각합니까?
예수님의 예언대로, 이렇게 세계의 정세 뿐만 아니라, 남북간의 대립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으로 얼마나 분열되어 있습니까? 이런 분열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오늘도 예루살렘 도성을 보고 우셨을 때처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루카 19,41-42)
그럼, 형제자매 여러분, 그 무엇이 이 세상과 우리사회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까? 우리가 평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잠시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평화의 기초는 생태계를 포함하여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입니다.
따라서 ‘모든 생명은 신성하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나의 가족, 형제자매’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기본적인 진리를 존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평화는 정의의 열매입니다.
전쟁, 분쟁, 폭력이 대부분 빈곤, 기아, 질병과 관련되어 있는 만큼, 민족간에, 우리사회 안에서 배척과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가난한 민족과 사람들에게 적정한 분배가 주어지지 않으면, 실제로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평화 실현은 불가능합니다.
‘평화(平和)’를 풀이해보면, 평평할 ‘평(平)’’와 화합할 ‘화(和)’자의 합성어인데, 화합할 ‘화(和)’를 풀이하면, 벼 ‘화(禾)’자와 입 ‘구(口)’자가 아닙니까?
따라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쌀, 곧 인권과 재화가 모든 민족과 사람들에게 평등하고,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셋째, 평화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정의는 평화 실현에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닌 만큼, 자비와 용서로 정의를 뛰어 넘어서야 합니다.
따라서 확고하고 영속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처럼,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누구에게나 아무런 조건없이 자신을 내주는 사랑과 용서를 주고 받아야 합니다.
넷째, 평화의 열매는 발전입니다.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모든 이의 책임이듯이 개인과 민족의 발전을 위해, 특히 인권을 수호하고 증진시키는 데 모든 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따라서 강요와 억압, 차별과 혐오없이 개인과 민족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공동선 실현에 이바지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평화와 화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참조)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세계의 평화 정착과 실현을 위해서 네 가지 원칙, ‘인간애, 정의와 사랑, 공동선’에 대해 묵상해보았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사회의 평화를 위해 나의 이웃을 한 가족, 한 형제자매임을 인식하고 존중하며, 증오와 불신을 버리고 용서와 사랑으로서 화해하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사회적 약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을 기꺼이 도와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우리국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서 적극 협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우리가 생활 속에 남들과 평화롭게 지내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남의 결점을 비난하는데 힘쓰지 않고, 남의 실수에 말을 삼가며, 남을 모욕하고 학대하는 언어폭력을 피해야 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16항)
남을 거칠게 다루는 일을 삼가하려 해야 합니다. 반대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남을 가르치려 드는 대신 남에게 가르침을 받으려 하고, 매사에 남을 나보다 앞세우려 노력해야 합니다.(117항)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악에 굴복 당하지 않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려고 기도하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113항) (2025.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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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님의 댓글
루치아노 작성일네

루치아노님의 댓글
루치아노 작성일ieeyongbeen영어이름(루치아노)李庸彬오얏이떠할용빚날빈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