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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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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안에서 함께 길을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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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찬일안드레아
댓글 0건 조회 153회 작성일 25-05-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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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일 창세15, 5-12.17-18;필리3,17- 4, 1; 루카9,28-36

 

  희망 안에서 함께 길을 걸어갑시다.

 

   중국 양나라 임금 무제가 도홍경(452-536)정치 참모로 곁에 두려고 하자, 도홍경은 구곡산에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합니다. 그러자 무제가 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산속에 무엇이 있어 나오지 않느냐?’ 이에 도홍경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답합니다

.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고요? 산마루에 흰 구름이 많이 있지요. 단지 스스로 즐길 뿐, 임금에게 갖다 줄 순 없사옵니다.”


   이렇게 자연인처럼 산중에 살거나, 등산을 하고 백패킹을 하는 데는 다 나름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지 않겠습니까?


   남산을 옛날에는 목멱산이라고 불렀는데, 그 연유를 알아보니까, 조선의 왕 태조가 1394년에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긴 후, 남산의 산신 목멱(木覓)에게 대왕, 작호를 주고 신당을 세워 국가의 평안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 해서 남산을 목멱산으로도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역대 왕조는 이렇게 명산 가운데 토함산, 계룡산, 지리산, 백산, 팔공산을, 다섯 개의 큰 산, 오악(五嶽)으로 지정하고, 제단을 마련하고 제사를 거행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선조들은 산에 신령이 계신다는 신앙을 갖고 있었듯이 구약의 히브리인들 역시 그러했는데, 아시는 바대로,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산, 이레에서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 하였습니다.(창세22,1-2 참조)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라는 소명을 받았고,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함께 40일동안 생활하면서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습니다.(탈출34,28참조) 또 엘리야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40일을 걸어서 호렙산에 갔습니다.(1열왕19, 8참조)


   이렇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산은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거룩한 장소로 여겼고, 그래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산에 가질 않았습니까?


   지난 주일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하시기 전에 광야로 들어 가셨고, 열두 제자를 뽑으시기 전에 산에 가셨습니다.(루카6,12-13 ) 군중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을 목격하고, 당신을 억지로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산으로 들어가지 않으셨습니까?(요한6,15 참조)


   인류 구원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예수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올리브 산에서 묵으셨고(루카21,37 참조), 부활하신 후 베타니아 근처 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이 지상에서의 삶을 산에서 마감하실 만큼, , 악인처럼 생활하셨습니까? 산에 머물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셨습니까?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이렇게 말씀하신 바대로, 예수님께서는 일정한 주거지가 없으셨기 때문, 방문하시는 마을 근처 산에서 노숙하면서 생활하지 않으셨겠습니까?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셨는데, 그 산은 타볼산으로 추정됩니다. 타볼산은 해발 580 미터, 나자렛에서 18킬로 떨어, 허허벌판, 광야에 우뚝 서 있는 산입니다.

   이런 타볼산을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30년간 생활하시면서 매일 조망하고 틈틈이 다니셨을 테고, 공생활을 하실 때도 나자렛을 오가면서 들리지 않으셨겠습니까?


   이렇게 예수님은 산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기도를 하셨고, 일상의 모든 일을 하느님과 상의하고 해법을 얻지 않으셨겠습니까?


   남산 둘레 길을 걷다 보면 손에 묵주를 들고 기도하면서 걷는 교우를 만나곤 하는데, 이렇게 남산을 나의 기도하는 장소를 만들어보면, 어떻겠습니까?


   저 역시 등산을 하면서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고, 자연에서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일상에서 겪고 있는 일들을 하느님과 상의하면서 위로와 지혜를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기도를 하실 때, 그분의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이고, 이렇게 영광에 싸여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당신이 곧 겪게 될 수난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셨습니까?

   이 얼마나 예수님의 놀라운 변모입니까?

 

   예수님의 이 같은 영광스러운 변모는,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씀한 바대로, 우리의 비천한 몸이 장차 부활하여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고, 또한 천상에서의 생활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광경을 보고서,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웠으면,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산에 초막을 짓고 함께 살자고 하였겠습니까? 그런데 구름이 일더니, 구름 속에서 하느님의 이런 말씀이 들려오지 않았습니까?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그럼, 예수님의 어떤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어떤 행적을 따르라는 것입니까? 그 해답을, 저는 예수님의 다음날 행적을 통해서 찾을 수 있었는데.


   다음날,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가셨을 때, 많은 군중이 그분께 마주 왔, 그때에 어떤 남자가 더러운 영에 걸린 아들을 치유해 주시길 간청하자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루카9,37-43 참조)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산하시어 일상으로 돌아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셨고,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와주질 않으셨습니까?

 

   산속에 사찰이 참 많습니다. , 많습니까? 불교의 승려들은 일년에 두차례,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겨울 안거(冬安居)와 여름 안거(夏安居)를 하면서 참선 수행을 합니다. 이렇게 깨달음을 얻고, 입전수수(立廛垂手), 저잣거리로 나와 중생을 구제하질 않습니까?


   누구든지 나의 집을 짓고 가족과 함께, 초막과 산문을 짓고 홀로 안락하고 행복하게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듯이, 가에서 입전수수를 하듯이 나의 집과 초막에서 나와야 하겠습니다. 집을 나서면 우리 주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처럼 그들과 접촉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을 성심껏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일상생활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생활이고, 천상의 행복,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올해 희년 사순절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희망 안에서 함께 길을 걸어갑시다.’ 라는 제목으로 담화문을 발표하셨습니다. 이 담화문을 통해 교황님은 다음과 같이 세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하셨는데, 잠시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우리는희망의 순례자로서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향했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까?   둘째,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사랑과 인내로 서로를 배려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고 있습니까?


   셋째,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바로 여기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우리는 믿음과 희망을 두고 있습니까?


   따라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갖고, 하느님의 나라에 정착하는 날까지 희망 안에서 기도하면서 함께 길을 걸어갑시다. (2025.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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