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물가는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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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 탈출 17, 3- 7;로마 5, 1- 2. 5- 8;요한 4, 5-42
나의 우물가는 어디에 있습니까?
몇 년 전에 시청하던 TV 드라마에서 어느 아버지가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을 하고자 하는 딸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군지 아니? 자신이 넘어졌을 때 일으켜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이란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을 하는 거지. 넘어졌을 때 자신의 손을 잡고 일으켜 줄 사람을 찾아 함께 사는 거야. 너는 지금 넘어져 있고, 너의 남편이 너를 일으켜 주기 위해 용서의 손을 내밀고 있으니, 그 손을 외면하지 말고 그 손을 잡고 일어나거라.”
이 얼마나 아버지의 훌륭한 충고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나의 가족이 혹시 정신적으로, 아니면 육체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가족을 외면하고 말고, 그의 손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워주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사마리아 여자는 여러 번의 재혼으로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었고, 더욱이 자신의 잘못된 행실 때문에 동네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으면서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여자에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이렇게 시작된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 여자는 과거의 잘못된 행실과 무미 조건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사마리아 여자에게 거룩한 변모는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까?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처음에는 그저 낯선 유다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예수님을 예언자로 인식하고, 마침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줌으로써 동네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서 예수님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해주지 않았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사마리아 여자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놀라운 변모가 일어났습니다. 그럼, 나는 예수님을 어디에서 만나 뵙고,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고 깨닫고 있습니까? 나의 우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본당 카페 이름처럼 야곱의 우물은 첫째, 우리의 직장이고 우리 동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직장과 동네에 현존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나의 동료와 이웃을 통해 예수님께서 나에게 물 한 잔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마리아 여자처럼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낯설다고 그들의 간청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배경과 이념, 종교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의 이웃과 동료를 배척해서는 결코 안되겠습니다.
우물가는 둘째, 우리의 가정입니다. 따라서 우리 가정 안에 예수님께서 현존해 계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삶에 지친 나의 가족을 통해 나에게 한 모금의 물을, 이해와 배려 사랑과 용서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따듯한 말 한 마디와 손길, 부드러운 눈길, 미소 띤 얼굴을 요청하고 있는 나의 가족을 사마리아 여자처럼 매몰차게 거절해서냐 어찌 되겠습니까?
셋째, 우물가는 우리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는 삶의 갈증을 해소해줄 생수를 마시기 위해서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는, 오늘 이 미사 중에 하느님의 말씀과 성체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그 물을 마시고 있는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넷째, 우물가는 우리 본당 고백소입니다. 고백소는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갖는 장소가 아닙니까? 따라서 고백소에서 우리가 뉘우치고 통회한 잘못을 고백함으로써 예수님의 용서를 받고, 사마리아 여자처럼 예수님의 용서를 가족과 이웃에게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믿어라. 진실한 예배자들이 성령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하느님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렇습니다. 지금이 바로 사순절입니다. 따라서 비단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든 우리는 성부 하느님께 참된 예배와 경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가정과 사회 생활 속에서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예수님과 더욱 더 친밀하게 관계를 맺고, 성령과 진리 안에서 참된 신앙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시골 사제관의 종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한 어린이가 서 있고, 손에 저금통이 들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미사 예물인데, 벌을 받고 있는 불쌍한 사람을 위해 연미사를 드려 주세요.” 이렇게 해서 한 어린이의 간청으로 익명의 불쌍한 사람을 위한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그 어린이는 훗날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쓴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는데, 조르주 베르나노스는 “그 불쌍한 사랑은 바로 유다 이스가리옷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조르주 베르나노스는 주님을 배반하여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을 유다가 가엾이 여겨서 그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나는 어떻습니까? 남들로부터 죄인 취급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나에게 잘못한 가족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용서해주어야 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오늘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고, 하느님의 은총 속으로 들어와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며,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안에서 불타오르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26.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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