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능해(他人能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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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일 이사 58, 7-10;1코린 2, 1- 5; 마태 5,13-16
‘타인능해(他人能解)
며칠 전에 입춘이 지나 이제 곧 봄이 찾아오겠지요. 제대 앞 화분을 한번 보십시오, 추위를 견디어 내며 붉게 꽃피우고 있는 동백,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제 곧 활짝 피면 붉은 꽃송이들이 떨어져 제대 밑에서 동백이 또 피어나지 않겠습니까?
동백, 꽃말이 뭐지 아십니까?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이런 꽃말을 갖고 있는 동백에게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부부가 섬에서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 사이에 어떤 사람이 몰래 숨어 들어와 아내를 해치려 달려들자, 아내는 남편이 있는 바닷가를 향해 도망가다 그만 절벽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것을 모른채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은 절벽에 떨어져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통곡하면서 무덤에 묻어주고 섬을 떠납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아내가 보고 싶어 섬에 돌아와 보니, 무덤 옆에서 한 나무에서 붉은 꽃들이 피어 있었는데, 그 꽃들이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하였습니다.
“난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이 얼마나 애잔한 이야기입니까?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나의 배우자에게 자주 말을 건네 준다면, 나의 배우자가 동백처럼 붉고 아름답게 활짝 피어나지 않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월요일 ‘주님 봉헌 축일’에 우리가 기도할 때 사용할 초를 축성하였는데, 그럼, 기도할 때 초를 왜, 켭니까? 미사 때 사용하는 제대 초는 밀랍(蜜蠟, bees wax)으로 만듭니다. 벌들은 꿀을 보관하고 알과 애벌레를 키우기 위해 벌집을 짓는데, 이 벌집에서 벌들이 만들어 내는 순수한 물질이 밀랍입니다.
이렇게 밀랍으로 만들어진 초처럼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원죄없이 잉태되어 나시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셨습니까? 또한 촛불이 스스로 타면서 빛을 내듯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봉헌하심으로써 이 세상의 빛이 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초를 켜고 기도할 때, 예수님처럼 초를 태우둣이 나의 몸과 마음을 봉헌하고, 촛불이 어둠을 밝히듯이 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그렇다면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이 세상의 빛으로서 생활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제1주일의 말씀대로, 우리가 “우리의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우리 집에 맞아들인다면 우리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올 것입니다.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의 혈육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준다면 우리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짓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우리가 굶주린 이에게 우리의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준다면 우리의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다른 한편,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고 음식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해주는 등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주는데, 이렇게 소금은 유익한 존재가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녹이지 않습니까? 자기 희생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이 세상의 소금으로서 희생과 나눔의 삶을 통해 살 맛나고 부정부패가 없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남 구례 화엄사 근처 조선시대의 양반 가옥에 운조루(雲鳥樓)이 있는데, 1776년 영조 때 낙안 군수 류이주(柳爾胄)가 지었습니다. 운조루 가운데 쌀이 세 가마니가 들어갈 수 있는 ‘뒤주’에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습니다. ‘타인능해(他人能解)’ ‘누구나 열 수 있다.’
이렇게 류이주는,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이 누구나 뒤주에서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고 절제와 절약해서 가진 바를 서로 나눔으로써 이 세상을 보다 더 정의롭고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는 2월11일(수)은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모든 병자들을 위한 날을 맞이하여 레오 교황님께서 ‘사마리아인의 연민’이라는 제목으로 담화문을 발표하였는데, 요약해보면 이렇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던 어떤 사람이 강도들에게 습격당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한 사제와 레위인은 그를 지나쳤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가엾이 여겨 상처를 싸매 주고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사마리아인은 가던 길을 멈춰서 다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 몸소 돌보아 줍니다. 심지어 그는 다친 사람을 위하여 자기 돈을 꺼내어 쓰고, 자기 시간을 다친 사람에게 내주지 않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이같은 형제애, 사마리아인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도 고통을 받는 이웃을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그 누구 보다도 먼저 모든 병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의료 종사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고, 봉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오는 11일 수요일 오전 10미사 때 병자성사를 드리고자 하오니, 병환과 노환 중에 있는 가족을 위해 병자성사를 청하고, 우리 이웃들이 영육간에 쾌유할 수 있도록 병자성사를 권유해야 하겠습니다.
잠시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기쁨이신 성모님, 저를 떠나지 마시고, 저를 외면하지 마소서. 어디에서나 저와 함께하시고, 저를 홀로 버려두지 마소서. 성모님께서는 참 어머니이시며 언제나 저를 지켜 주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저에게 복을 내리시도록 빌어 주소서. 아멘.” (2026.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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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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