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혐오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악입니다.
페이지 정보

본문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이사11, 1-10;로마 15, 4- 9;마태 3, 1-12
우리가 혐오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악입니다.
제대 앞 대림환 2번째 촛불이 환히 밝혀져 있습니다. 주님의 성탄절이 곧 다가오겠죠? 대림절 동안 기도 생활을 좀더 열심으로 하고, 가족과 이웃을 더 사랑해서 성탄절을 은혜롭고 기쁘게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때에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는데, 그런데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럼, 형제자매 여러분, 세례자 요한은 왜, 바리사이와 사두가이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독설을 퍼부었습니까?
그 당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신을 거룩한 사람으로 자처하면서 율법과 전통을 충실히 지킬 수 없었던 동족을 죄인 취급하였고,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후손,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이라고 자부하면서 타민족, 이방인들을 개 돼지 취급하듯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가두가이파 사람들은 가장 오랜 히브리 전통을 고수하면서 믿음과 예식의 새로운 요소라면 무엇이든 배격하였습니다. 그들의 다수는 부유한 제사장들과 원로들로 로마 제국에 협력하여 동족은 어찌 됐든 상관없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는데 애썼습니다.
그 밖에 율법학자, 에세네파, 열혈당원 등 종교적으로 열심하다는, 독실한 종교인들이 오히려 동족을, 그 가운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병든 사람들을 차별하고, 죄인들을 배격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런 종교인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라.’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고 촉구했던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을 혁명으로 로마 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키거나 로마 정권에서 유다 정권으로 단순한 교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사회 개혁과 각 사람의 회개를 호소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종교 지도자들은 물론 정치 사회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 다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말로는 평등, 공정을 주창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혜를 더 누리고자 합니다. 이 얼마나 큰 위선입니까?
또 불법과 불공정을 일삼다가 국가와 국민에게 큰 피해를 주었음에도 자신들의 반성과 회개 없이 돌연히 나타나 준엄한 심판자가 되고자 하지 않습니까? 이 얼마나 어불성설입니까?
그럼에도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멸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종교와 사상과 이념 다르다고 다른 사람을 혐오하고 배격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특혜와 특전을 누리고자 해서도 안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너희를 회개 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이렇게 주님께서 나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만큼, 나의 생활을 정화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처럼 알곡은 나의 생활 속에 모아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몸과 마음 안에 있는 악령, 곧 탐욕, 교만, 증오, 분노, 질투, 절망을 불 태워버리고, 성령, 곧 기쁨. 평화, 사랑, 믿음, 희망을 더욱 키우고자 노
력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솔로몬 왕 통치 이후에 기원전 920년경 남북으로 갈라져 전쟁을 함으로써 북 이스라엘은 결국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멸망하였고 남 유다는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나무가 쓰러져 그루터기와 뿌리만 남아 있는 것처럼 유다는 전쟁과 분열과 환난으로 그야말로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유다인들에게 이사야 예언자가 오늘 제1독서의 말씀대로, 이렇게 희망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이사이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이고 뿌리인 후손 성모 마리아를 통해 햇순과 새싹처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유다를 정의와 자비, 평화가 강물처럼 넘치는 나라와 민족으로 세워주시라는, 이 얼마나 희망에 찬 말씀을 이사야 예언자가 전해주지 않았습니까?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는 이념 때문에 갈등과 대립 속에 빠져 있습니다. 증오와 불의, 불평등과 차별 때문에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형제자매 여러분, 이사야 예언자처럼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나라를 보다 더 정의롭고 자비롭고 평화가 넘치는 나라와 민족으로 세워주시리라는 희망과 믿음을 갖고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인권 주일’입니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혐오와 차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혐오는 갈수록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주민과 난민, 특정 국가와 종교, 성소수자와 장애인 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혐오가 집단화, 이념화, 세력화되어 맹목적인 신념으로 더욱 굳어질 위험에 놓여 있지 않습니까?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제2독서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우리가 혐오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악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정의와 사랑이 실현되고 차별 없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먼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로서 존엄하다는 근본 진리를 받아들이고, 보편적 형제애를 추구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겠습니다(제44회 인권 주일, 제15회 사회 교리 주간 담화, 정의평화위원회 참조). (2025.12. 7)
- 이전글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25.12.13
- 다음글그대는 미리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십시오. 25.11.29
댓글목록

루치아노님의 댓글
루치아노 작성일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