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소서,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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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바룩 5,1-9;필리 1,4-6.8-11;루카 3,1-6
임하소서, 임마누엘
제대 앞에 장식되어 있는 대림환, 두번째 촛불이 환히 밝혀져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대림절, 잘 지내고 계시죠? 또 주님의 성탄을 어떻게 맞이하고 계십니까?
지난 주간에 저는 레프 톨스토이가 쓴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다’ 라는 단편 소설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 마르틴은 구두를 만들고 고치는 제화공입니다. 착하고 성실한 그가 그런데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5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자식 두 명과 아내를 하늘 나라로 보냈는데, 근래에 하나 남은 막내아들까지 병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술로 시간을 보내며, 자신도 빨리 죽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습
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르틴은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삶에 감동을 받고 새로운 희망을 갖고 열심으로 생활하였습니다.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그때 하느님의 이런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마르틴, 내가 내일 찾아 갈 테니 창 밖을 보아라.”
그래서 마르틴은 그날 하루 종일 창 밖을 바라보며 “하느님께서 언제쯤 오시려나”, 이렇게 중얼거리며 하느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하느님은 오시지 않고, 창 밖에서 연로한 청소부가 눈을 맞으며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르틴은 청소부를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한 뒤, 따뜻한 차를 대접했습니다.
청소부를 보내고 두어 시간이 지난 뒤, 창 밖을 보니, 아기를 안은 여인이 눈보라 속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마르틴은 여인을 가게 안으로 맞아들여 옷을 입혀주고 먹을 것을 대접했습니다.
또 거의 해가 질 무렵, 창 밖을 바라보니, 사과를 파는 노파가 사과를 훔친 소년을 붙잡고 야단치고 있었습니다. 마르틴은 가게 밖으로 나가 노파에게 사과 값을 대신 갚아주면서 소년을 용서해주기를 권유하며 원만하게 해결해주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마르틴은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밤도 마르틴은 성경을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꿈 속에서 자신이 오늘 대접했던 청소부와 아기를 안은 여인, 그리고 사과를 훔친 소년이 나타나 미소를 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하느님의 이런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마르틴, 네가 오늘 만난 이 사람들이 바로 나였다. 너는 나를 대접한 것이다.”
마르틴은 꿈에서 깨어나 펼쳐져 있는 성경을 보니, 거기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형제자매 여러분,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이사 7,14) “임하소서, 임마누엘”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마태 1,23)
그렇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십니까? 따라서 하느님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따듯하게 사랑하는 생활이 바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 배고팠던 시절의 아침 인사말이었습니다. “밥 먹니, 밥 먹고 가라.” 그 가난한 시절에도 우리에게 이런 사랑이 있었고, 보리밥이라도 함께 나눠 먹으면서 행복해 하질 않았습니까?
우리 모두는 끼니를 함께 하는 식구(食口)입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눌 때, 더 맛있고 먹는 즐거움도 더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보태면 한 사람의 배고픔을 덜 수 있습니다.
그런 뜻으로 대림절 동안 나의 음식을 절제하고 절약해서 저금통에 정성껏 모아 불우한 이웃들과 함께 나눈다면, 주님의 성탄을 얼마나 기쁘게 맞이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며칠 전에 어떤 분이 건네 준 봉투를 열어보니, 연필 한 자루와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는데, 편지에는 다음과는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제여, 내가 그대에게 주는 선물인 이 연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첫째, 이따금 연필을 뾰족하게 깎을 필요가 있는 것처럼 영적 수행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 영혼을 잘 다듬을 필요가 있다. 자신을 다듬는 것은 고통스럽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더 좋은 연필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아무리 겉이 아름다운 연필이라도 안의 연필심이 부실하면 좋은 글씨를 쓸 수 없듯이 우리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따라서 자신이 일시적인 육체에 머무른 영원한 존재임을 잊지 말고 내면의 영적 성장에 힘을 쏟아야 한다.
세 번째, 좋은 연필은 끝에 좋은 지우개를 달고 있다. 글씨가 틀리면 지우개로 지우듯이 그대가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그 즉시 양심이라는 지우개를 사용하여 자신의 실수를 바로 잡아야 한다.
네 번째, 연필로 글을 쓰지만, 결국 훌륭한 글을 쓰는 것은 그 연필을 손에 쥔 작가이다. 그 작가에게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연필이라도 글을 탄생시킬 수 없다. 이렇듯 그대가 많은 뛰어난 일들을 할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 인도하실 때야 비로소 그 일들을 성취할 수 있다.”(‘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류시화, 더숲 참조)
어떻습니까? 따라서 작가가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좋은 심을 가진 연필처럼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훌륭하고 큰 일을 하실 수 있도록 대림절 동안 기도하면서 영적 수행을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을 보다 더 아름답게 다듬는데 힘을 쏟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생활하면서 실수하고 잘못한 일을 있다면, 연필의 지우개와 같은, 고백성사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가족과 이웃과 화해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실천하면서 대림절을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어,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2024.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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