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의 자비가 제 안에 머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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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다니 12,1-3;히브10.11-14.18;마르13,24-32
주님, 당신의 자비가 제 안에 머물게 하소서.
지난 수요일 오전에 봉성체를 다녀왔는데, 봉성체(奉聖體)는 병환이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서 성당에 오지 못하는 교우에게 신부님과 수녀님이 성체를 가정이나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럼, 봉성체를 통해 선사 받는 은총은 무엇입니까? 영성체를 함으로써 영적인 위로와 평안을 얻고, 이렇게 영적인 힘을 얻어 노환과 병환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나의 침상과 병석에서, 고독과 고립 속에서 하느님과 보다 더 가까이 하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고 있다는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거동이 불편한 부모와 교우가 봉성체를 할 수 있도록 권유하고, 가족과 구역 반장이 본당 사무실에 신청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요즘 남산 둘레길 단풍,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한양 도성길 단풍이 더 아름답게 피었다 지고 있습니다. 엊그제 남산자락 숲길에서 단풍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가을’이라는 시가 생각났었는데, 그 시를 한번 감상해보겠습니까?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멀리부터 떨어집니다. 하늘나라 속 먼 정원이 시든 것처럼 천천히 머뭇거리며 떨어집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이 무거운 지구도 별들에게서 멀어져 고독 속으로 떨어집니다.
우리도 모두 떨어집니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집니다. 그대여, 보시라. 만물이 떨어지는 것을, 하지만 그 어느 한 분이 떨어지는 이 모든 것을 한없이 부드럽게 두 손에 받아 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단풍이 떨어지듯 나의 실패, 실직과 퇴직할 때, 나의 생로병사 속에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무한히 다정한 손길로 나를 어루만져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얼마나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고 계십니다. 가난은 ‘몹시 힘들고 어렵다(艱難)’는 뜻인데, 따라서 물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신앙적으로 냉담 중에 있는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정성껏 돌보아 주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습니까? 전쟁과 기후 위기로 더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통스럽고 비참한 상황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게 해 달라고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있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왜, 우리의 간청에 귀 기울이지 않으시는 듯합니까?
하느님의 이같은 침묵은, 하느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무심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전쟁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침묵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이기심 때문이 아닙니까?
기후 위기는 하느님의 징벌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함으로써 자초한 재앙이 아닙니까? 가난이 왜, 대물림 되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소득을 균등하게 배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환난에 뒤이어 해, 달, 별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이렇게 일찍이 없었던 재앙의 때에 오늘 제1독서, 다니엘 예언자의 말씀대로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영원한 치욕, 수치를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들의 울부짖음, 무분별하게 파괴되고 있는 자연의 울부짖음, 불공정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점점 더 커져가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를 빼앗겨 버린 듯한 이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믿음과 희망을 갖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면서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면서 자연 파괴이 아니라 자연 보호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면서 불공정이 아니라 공정을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이하여 기도하면서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사도, 폴란드의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Maria Faustina Kowalska, 1905-1938) 성녀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치면서 예수님의 자비를 실천하였는데, 그 기도를 저와 함께 바쳐 보겠습니까?
“주님, 당신의 가늠할 수 없는 자비가 저의 몸과 마음을 통하여 저의 이웃에게 전해지게 하소서.
주님, 제 눈이 자비로워지도록 도와주소서. 그래서 제가 결코 겉모습만 보고 제 이웃을 의심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제 이웃의 영혼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 그들을 돕게 하소서. 주님, 제 귀가 자비로워지도록 도와주소서. 그래서 제가 이웃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마음을 기울이고, 그들의 고통과 탄식에 귀를 막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제 혀가 자비로워지도록 도와주소서. 그래서 제가 이웃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저마다 위로와 용서의 말을 하게 해주소서. 주님, 제 손이 자비로워지고 선행으로 가득하도록 도와주소서. 그래서 제가 이웃에게 오직 친절 만을 행하고, 제 스스로 더 힘들고 고된 일을 맡게 하소서.
주님, 제 발이 자비로워지도록 도와주소서. 그래서 제가 저의 피로를 이겨 내고, 제 이웃을 도우러 서둘러 달려가게 하소서. 주님, 제 마음이 자비로워지도록 도와주소서. 그래서 제가 이웃의 고통을 느낄 수 있게 하소서. 제 친절을 남용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지라도 저는 그들도 진심으로 대하겠나이다.
그리고 저 자신을 가장 자비로운 예수 성심 안에 두겠나이다. 주님, 당신의 자비가 제 안에 머물게 하소서. 아멘!”(‘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제2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참조) (202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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