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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들은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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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당사무실
댓글 0건 조회 195회 작성일 26-07-0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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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2역대 24,18-22;로마 5, 1- 5;마태10,17-22

 

                 교우들은 보십시오.

 

   지난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까? 깊은 애도와 함께 희

생된 모든 영혼이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해야 하겠고, 그 모든 슬픔과 시련을 

이겨내고 하루빨리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잘 아시는 바대로 1821년 충남 솔뫼에서 태어나시어 열여섯 살에 마카오로 유학

을 가셔서 신학공부를 하시고 1845년 8월에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으시고, 귀국하신 후 10개월 가량 

사목활동을 하시다 가 1846년 6월에 체포되시어,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스물 여섯의 짧은 생애를 사셨는데, 그럼, 청년 김대건 신부님은 사제 생활을 어떻게 하셨

는지를 잠시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사제품을 받으시자 마자, 곧 바로 작은 목선을 타고 조선교구 3대 교구장 페레올 

고 주교님과 5대 교구장이 될 다블뤼 안 신부님과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상해를 출발, 제물포를 향하

셨습니다.

   그런데 항해 중 거센 풍파를 만나 표류하시다가 제주도 한경면 용수리 해안에 닿게 되셨고, 배를 

정비한 후 마침내 금강을 통해 강경 나바위에 도착하시는데, 상해를 떠난 지 42일만이었습니다.

 

   이렇게 입국하신 김대건 신부님은 그후 어디에서 무엇을 하셨을까요?

 

   먼저 어머니를 찾아가 뵙지 않으셨겠습니까? 모친 고 우르슬라와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는, 김대

건 신부님이 일곱 살 때, 박해를 피해 솔뫼에서 교우촌 용인, 골배 마실로 가서 정착하였는데, 그곳 근

처 은이 공소에서 김대건 신부님은 열다섯 살 때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 길을 떠나시

기 직전까지 생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십년 후 김대건 신부님은 사제가 되어 귀국하시는데, 어린 시절에 살던 골매 마실로 가셔

서 홀 어머니와 상봉하십니다. 아버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에 순교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의 상봉의 기쁨도 잠시뿐, 골매 마실을 떠나 각지를 돌아다니시면서 신자들을 만나셨는

데, 혼자서 전교를 한다는 것이 역부족을 느끼시고, 또다시 서해 해로를 통해 선교 사제들을 입국시

킬 통로를 개척하시다가 체포 되십니다.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김대건 신부님이 감옥에서 심문을 받으시던 중에 받은 질문입니다. 그 당

시 박해 시절에 천주교인임을 인정하면 곧 죽음이었는데, 김대건 신부님은 주저함없이 대답하셨습니

다. “그렇소. 나는 천주교이오.”

 

   이렇게 청년 김대건 신부님은 1년 1개월간의 짧은 사제 생활이셨지만, 이 땅에 하느님의 복음을 전

하려는 일념으로 40여일 간의 표류, 역경을 이겨내시고, 10개월 동안 각지를 다니면서 신자들을 만나

시는 등 열정과, 마침내 목숨마저 내던지시는 불굴의 신앙을 증거하지 않으셨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내년 8월에 서울 세계 청년 대회가 개최됩니다.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 우리 본

당 교우들이 제대 앞에 ‘로마 백성의 구원 성모상’을 모시고 미사 전 후에 묵주 고리 기도를 바치고 있

지 않습니까?

 

   따라서 온 세상의 젊은이들이 김대건 신부님의 신앙을 본받고, ‘용기를 내어라.’ 하신 예수님의 말

씀 안에서 사랑의 용서의 십자가가 세상에 대한 승리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오늘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젊은이들이 언제나 어디서나 희망을 찾고, 희망 안에

서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하느님의 믿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옛날 박해 시절, 천주교 신자를 가려내는 방법으로 저자 거리에 성물 등을 깔아 놓고 동네 사람

들에게 그것을 밟고 지나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무심히 밟고 지나지 못하고 성물 앞에서 머

뭇거리거나 피해가면 천주교 신자로 여겨 감옥에 가두고 배교를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박해 시절에 신앙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바로 죽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신앙의 선조

들은 오늘 제1독서, 즈카르야 예언자처럼 목숨을 바치면서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럼, 우리는 나의 신앙을 생활 속에서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요즘 월드컵을 시청하다 보면, 많은 관중의 환호 속에서 입장을 하는 선수들 가운데 성호경을 긋

는 선수를 목격하게 됩니다. 아르헨티나의 메시는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하면서 성호경을 긋습니다. 

이렇게 가족과 이웃앞에서 당당하게 성호경을 긋는 것도 나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대건 신부님께서 감옥에 계실 때, 교우들에게 보내신 편지의 일부분을 잠시 묵상해보고자 합니

다.

 

   “교우들은 보십시오. 우리 벗이여, 생각하고 생각해 봅시다. 밭을 심는 농부를 보건대, 때를 맞춰 

밭을 갈고 거름을 주며, 더위에도 몸의 고생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다운 씨를 가꿉니다.

 

   밭 거둘 때에 이르러서 곡식이 잘 되고 여물면, 농부는 땀 흘린 수고를 잊고 오히려 즐기며 춤추

며 기뻐합니다. 하지만 곡식이 여물지 아니하고 밭 거둘 때에 빈 대와 껍질만 있으면, 농부는 밭에서 

땀 흘려 거름을 내고 들인 수고를 생각하고 그 밭을 박대합니다.

 

   이같이 주님께서는 땅으로 밭을 삼으시고 우리 사람을 벼를 삼으며, 은총으로 거름을 삼으시고, 강

생 구속하여 피로 우리를 물 주시어 자라고 여물도록 하셨습니다.

 

   마침내 심판을 거두기에 이르러, 주님의 은혜를 받아 여문 사람이 되었으면 주님과 의로써 맺어진 

자녀로 천국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물지 못하였으면 주님과 의로써 맺어진 자녀라 하더라도 

원수가 되어 영원히 마땅한 벌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주님의 거룩한 뜻을 따르며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 대장의 편이 되

어 세속과 마귀를 공격합시다.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용맹한 군사처럼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해

서, 세속과 마귀와 육신과 싸워 이겨냅시다.” (2026.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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