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페이지 정보

본문
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2열왕4,8-11.14-16ㄴ; 로마6,3-4.8-11; 마태10,37-42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어느덧 이번 주간에 ‘예수 성심 성월’ 6월을 마감하고, 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을 맞이하게 되었습니
다. 세월이 유수 같죠? 이렇게 올해 반년을 보냈는데, 어떻게 지냈습니까? 그럼, 남은 반년을 또 어떻
게 지내고자 합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기도와 독서를 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것은 지상에서 가장 큰 힘이고 지혜
입니다. 사랑을 주고 받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것은 하느님께 받은 특권입니다.
친절하고 웃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것은 행복의 길입니다. 가진 바를 나누고 선한 일을 하는 시
간을 가지십시오. 그것은 공덕을 쌓고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세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친구는 그가 가장 좋아 하고 신뢰하는 친구였습
니다. 두번째 친구는 좋아하기는 했지만 첫번째 친구보다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친구는 친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먼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는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첫번째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이유도 말하지 않고 함께 가기를 거절했습니다
두번째 친구에게 부탁하자, 그 친구는 “성문 앞까지는 함께 가주겠지만 그 이상은 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친구에게 부탁하자,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가자면 기꺼이 함께 가겠네. 어려움을 함께 이겨가는 것이 친구가 아니겠나.”
형제자매 여러분, 그럼, 그 사람에게 세명의 친구들은 과연 어떤 친구들이었을까 요?
첫번째 친구는 재산입니다. 재산은 제 아무리 소중히 여기고 사랑 할지라도 죽음이라는 먼 길을 떠날 때는 다 남겨두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친구는 사랑하는 사람니다. 사랑하는 사람 역시 무덤까지는 따라가 주지만 그 이후에는 혼자 갈 길을 가야 합니다. 세번째 친구는 선행입니다. 평상시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죽은 뒤에도 선행은 나와 동행해 줄 친구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하느님 나라로 가는데 나와 함께 동행해주는 것은 재산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고, 나의 선행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
코 잃지 않을 것이다.”
우리 본당 까페 이름이 무엇입니까? 야곱의 우물(창세29, 1)입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
서 우물가에 앉아 계셨을 때, 마침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나에
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라고 청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해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처럼 야곱의 우물에서 교우들이 서
로 만나 차를 마시면서 담소와 친교를 나누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지난 2주전부터 우리 성당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매주 수요일 정오에 무료로 차와 음료를 나누
고자 야곱의 우물을 개방하였는데, 지난 주에 40여명 사람들, 주로 청년들이 쉬고 갔습니다. 물론 봉사
자들이 점심을 거르며 봉사하고 있지만, 얼마나 좋은 선행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주일 오전에 우리 성당을 지나가는, 걷고 뛰는 사람들을 위해 선교 분과에서 주차장 옆에
물통과 컵을 마련해 놓았는데, 이 또한 좋은선행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2015년 메르스가 유행하였을 때,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스티커를 부착해 놓은 종교 시설이 많아
서 오백 원을 받기 위해 성당에 오던 사람들도거의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한번 1천원
을 나눠 드렸더니, 소문을 듣고 찾아온 방문객이 점차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성당 교우 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의 시선이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벽 미사가
끝난 후 성당 바로 옆 한적한 이면 도로에서 나눠드렸고, 추석 때와 성탄절에 선물도 함께 나눠드렸
을 때는 2백여명이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작은 나눔을 바라는 사람들이 우리 본당 바로 옆에 얼마나 많이 계십니까?
주보에 공지되어 있는 바대로, 장롱에 모아둔 동전을 모으고 있습니다. 동전을 모아서 작은 나눔
을 바라고 있는 우리 본당 방문객들에게 나눠드리고자 합니다. 함께 참여하면 어떻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
들이는 사람이다.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예언자를 예언
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오늘 제1독서를 보면, 아들이 없고 남편의 나이도 많은, 어느 부인은 엘리
사 예언자를 알고 보고서 매번 기거할 수 있도록 작은 옥탑 방과 음식을 제공합니다. 이렇게 나그네
를 정성껏 환대함으로써 그 부인은 이듬해에 아들을 낳지 않습니까? (2열왕 4,17)
물론 선행을 무슨 대가나 보상을 바래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선행은 반드시 그만큼의 은총
을 하느님께서 선사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그럼, 우리가 남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가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아주 남루한 차람을 한 거지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아주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거지에게 말했습니다, “나의 형제여, 참으로 미안하게 되었네. 가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난들 어쩌 하겠나.”
그러자 그 거지는 톨스토이를 쳐다보며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미안하시다니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선생님은 저를 형제라고 불러 주셨는데요. 그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2026. 6.28)
- 이전글교우들은 보십시오. 26.07.04
- 다음글두려워하지 마라. 26.06.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