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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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탄 대축일 낮미사 이사 52, 7-10;히브 1, 1- 6;요한 1, 1- 18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Merry Christmas! 주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성탄하셨습니다. 주님의 성탄, 얼마나 기쁘고 은혜롭습니까? 성탄하신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탄 날에 주님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이렇게 전하지 않았습니까?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이렇게 아기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성탄하시어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십니다.
그런데 형제자매 여러분, 구원자 그리스도, 아기 예수님께서 왜, 동물이 사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마구간처럼 죄악으로 오염되고 더럽혀진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심으로써, 이 세상을 죄악으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우리의 죄를 깨끗이 없애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하느님의 은총입니까?
아기 예수님께서 요람이 아니라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십니다. 구유는 동물이 먹는 여물을 담는 그릇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왜, 이렇게 오셨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동거동락하시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이 얼마나 위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까?
며칠 전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쓴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읽어 보았는데, 이런 내용이 아니었습니까?
추운 섣달 그믐날 밤에 어느 소녀가 거리에서 성냥을 팔지만, 그 누구 하나 쳐다 보지 않습니다. 성냥 한 다발도 팔지 못해 아버지에게 혼이 날 것이 분명합니다.
설령 아버지한테 혼이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집 안에 있든 거리에 있든 춥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그 소녀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어느 집 담벼락에 서 있다가 언 손을 따듯하게 하기 위해 성냥개비를 태우면서 환상에 빠져져 듭니다.
이튿날 아침, 사람들이 모여 웅성댑니다. 그 소녀가 한 손에 타 버린 성냥 다발을 쥐고 웅크리고 앉아 얼어 죽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소녀가 몸을 녹이려고 성냥에 불을 붙였다고 생각하고 가여워 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런 안타까운 사고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왜,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이 추운 날, 아기 예수님께서 구유에, 포대기에 싸여 누워 계십니다. 왜, 그렇게 집도 없이 가난하게 성탄하셨습니까?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자 하는 표징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추위에 떨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 고통 속에서 예수님께서 성탄하셨습니다. 배고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무관심과 고독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안으로 예수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이렇듯 아기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함께 하시고자, 고통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역시 가난한 가족과 이웃에게 따듯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외면한다면, 예수님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고 있는 가족과 이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따라서 주님의 성탄의 은총을 가족과 이웃에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17세기 독일의 가톨릭 신비주의자, 안젤루스 실레시우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천 번을 베들레헴에 태어나신다 해도 그대 안에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지 않는다면, 그대는 영원토록 헛되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신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를 낳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예수님을 어떻게 성탄하셨습니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지 않으셨습니까?
성모 마리아처럼 우리도 하느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매일 나에게 들려주시는 그 말씀에 귀담아들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마음뿐만 아니라 나의 정신과 기억과 감정, 나의 몸과 감각 안에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드리고 잉태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낳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내가 미워하는 있는 가족과 이웃을 하느님의 말씀대로 그 미움을 내려놓고 용서해준다면, 나는 오늘 성모 마리아처럼 우리 가족과 이웃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 평화를 낳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성탄의 은총이고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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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 작성일천주마리아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