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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미리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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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당동성당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5-11-2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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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일   이사 2, 1- 5;로마13,11-14;마태24,37-44

 

    그대는 미리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뜬금없이 새해 인사인가 싶겠지만, 오늘은 교회 달력으로 보면, 대림절 첫날,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대림절은 어떤 시기입니까? ‘대림(待臨)’은 한자로 기다릴(), ‘임할()자인데, ‘곧 직면하게 될 어떤 일을 기다리고 대비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깨어 있어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제자매 여러분, 대림절 동안 첫째 2천여년전에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면서 잘 준비하고, 둘째 장차 종말에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깨어 대비하고, 셋째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따스하게 영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오늘 제대 앞에 대림환을 아름답게 장식해 놓았는데, 푸른 나뭇가지로 엮어 만드는 대림환은 희망을 상징하고, 네 개의 대림초는 4주 동안 가장 짙은 색 초부터 하나씩 매주 불을 밝힘으로써 주님 오심이 가까워졌음을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대림절 동안 신앙의 희망을 갖고 주님을 합당하게 맞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일 미사와 묵주 기도, 특강과 판공 문제집 풀기 등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대림시기에 사제는 사순절처럼 회개와 속죄를 뜻하는 보라색 제의를 입습니다.

   따라서 대림절 동안 판공성사를 통해서 회개와 속죄의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형식적이고 의무적인 고백성사가 아니라 하느님과 화해하고, 족과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주고 화해하는 성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간혹 부부 싸움 좀 합니까? 오랜 침묵보다는 한바탕 싸움이 부부관계에 더 좋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그런데 운전을 할 때 중앙선을 넘으면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나듯이 부부 싸움에서도 넘지 말아야 하는 중앙선이 있습니다.

   그럼, 서로 싸우더라도 침범해서는 안되는 중앙선은 무엇일까요?

   첫째 막말은 하지 않습니다. 둘째 이혼하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째 절대로 따로 자지 않습니다.”

 

   집에 통풍이 잘되려면 문과 문 사이에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약간의 공간이 있어야 통풍이 잘됩니다. 부부관계도 그렇습니다. 약간의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배우자가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서로 격려하며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배우자를 하느님을 대하듯 대하고 있습니까? 배우자가 자신이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까? 경청하고 있습니까? 공감하며 대화하고 있습니까? 배우자를 따듯하게 보호하고 안아주고 있습니까? 자연에서 배우자와 함께 놀아주고 있습니까?”

   이렇게 판공 성사를 통해 부부간에 서로 성찰해보고, 배우자를 더욱 더 사랑하는 대림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대림절 저금통을 하나씩 나눠드릴 텐데, 불우한 이웃을 기억하면서 대림절 동안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절약해서 저축해 두었다가 연말에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불교에서 보시(布施)라고 하면 보상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을 뜻하는, 보시 중에서 가장 쉬운 것은 재시(財施)로써, 재물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법시(法施)인데, 인간의 영혼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보시는 무외시(無畏施)로써, 정의를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던지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가난한 이들에게 필수적인 물건들을 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선물로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되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비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4세기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우스(330-379) 주교의 말씀을 잠시 묵상해 보겠습니다. 

   그대가 숨겨 둔 그 빵은 굶주린 이들이 먹어야 할 빵이며, 그대의 옷장에 처박아 놓은 옷은 헐벗은 사람들이 입어야 할 옷입니다. 그대의 신발장에서 썩고 있는 신발은 맨발로 다니는 이들이 신어야 할 신이고, 그대의 금고에 숨겨 둔 돈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할 돈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많이 도와줄 수 있는데도 도와주지 않는 것은 그대가 그만큼 그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대는 빈손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빈손으로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단지 한길 짜리 작은 땅이 아닙니까? 흙과 돌 조금이면 그대의 죽은 몸을 충분히 덮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대는 미리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십시오. 자비를 베푸는 것은 죽은 자에게 어울리는 최상의 의복입니다. 선행으로 정장을 차려 입고 떠나십시오.” (202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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